절규
사도 7,51-8,1ㄱ /요한 6,30-35
독서에서 스테파노는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주님의 오심을 예언한 예언자들을
줄곧 박해해 온 그들의 조상들과 같이
이제는 그들이 예언된 분을
배신하고 죽였다고 말한다.
이어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열린 하늘을 보고
거기에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다.”고 말하자
그들은 큰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끌고가서 돌을 던져 스테파노를 죽인다.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있는
백성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의 모습을 보며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이 떠오른다.
이 그림은 현대인의 내면의 공포와 불안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열린 하늘과 영광스런 주님 현존의 소식에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을 만큼
그들이 피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느님의 아들을 죽였고
지금 또 다른 살인을 앞두고
늘 신성모독이라며 하느님을 핑계삼아 정당화해왔지만
더 이상 묻혀 있을 수 없는 내면의 소리,
양심의 소리가 내는 절규를
듣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절규를 무시한채
세상의 아성을 지키기 위한 길을 계속 간다.
그럴수록 그들의 내면의 불안과 공포는 커져가고
어느 순간 그들은 그 절규에 눌려
처참히 죽게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죽기까지 이 살인자들을 위해 기도한 스테파노처럼
주님은 목을 뻣뻣이 세우고
주님께 맡겨놓기라도 한 듯이
무엇을 달라고 보채는 이들에게
끝까지 그들을 위한 빵으로 남아계신다.
괘씸해서 주려던 마음이 쏙 들어갈 듯한데도
주님은 여전히 마음과 귀가 닫힌 그들에게
‘내가 생명의 빵이다.
너희가 살길이 여기다.’라며
계속해서 우리 마음에 외치고 계신다.
그러나 아무리 소리를 높여도
눈앞에서 손을 휘저어대도
그들의 눈은 아직도 뜨일 줄 모르고 있다.
‘주님, 저희 마음과 귀를 열어주시어
애타게 부르는 당신의 소리를 듣게 해주십시오.
열심히 흔들고 있는 당신의 손을 보게 해주십시오.’
- Veronica Yang. 4. 28.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