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과 표징 사이에 걸터앉아서…

현상과 표징 사이에 걸터앉아서…
사도 6,8-15 / 요한 6,22-29

오늘 독서에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서
큰 이적과 표징을 일으키고
논쟁을 걸어오는 이들에게
지혜와 성령으로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반대자들은
얼토당토않은 모함으로 그를 몰아세우지만
그럴수록 그의 얼굴은 하느님의 얼로 더욱 빛나
적대자의 눈에도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이적 앞에서도
그저 현상만 볼 뿐입니다.

복음에서는
빵의 기적을 체험한 후
무슨 작전이라도 하듯이 무리를 이루어
예수님을 찾아 나선 이들에게
단지 현실을 충족해 준 현상만을 보고 있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표징을 보라고 촉구하십니다.

‘표징이란 사물, 현상, 행동들을 통해
심오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할 때 사용된다.
그러므로 표징이란 본질적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표징에 있어 중요한 것은 표징 자체가 아니라
표징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이다.’(신약성경 용어사전)

반면 ‘현상’이란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대상을 말하며
현상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동사 ‘phainesthai’는
‘보이다, 나타나다.’ 라는 뜻으로
지각되는 사물의 겉모습이 실제와 다른지
어떤지에 대해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이는 현상만으로는 그 의미,
원천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지 빵이라는, 현실적 필요라는 현상에서 눈을 돌려
영원한 양식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하느님의 마음을 만나는 표징을 읽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상을 보고 달려온 군중들처럼
우리는 자주 묻곤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다분히 현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현상과 표징,
이 세상 가치와 하늘나라 가치라는 중간에 걸터앉아
질문하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외아들까지도 기꺼이 내어준 아버지의 사랑을 보아라.
영원한 생명까지 주기 위해
다시 살아난 나를 보아라.
너희가 혼자로는 감당하기 힘들까 봐
성령으로 늘 함께하시려는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보아라.

십자가에 달린 내가 표징이고
부활한 내가 표징이고
성령이 바로 표징이다.

너희가 할 일은
아버지의 지극한 이 사랑을 믿는 것이다.”

주님, 오늘 저희가 당신께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묻기보다
구원의 역사에서 그 표징들이 가리키고 있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믿게 해주십시오.

  • Veronica Yang. 4.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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