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선교수녀회

우리도 지금은 침묵으로 기다릴 때

양베로니카 수녀님의 말씀 묵상

우리도 지금은 침묵으로 기다릴 때
이사 50,4-7 마태 26,14-75, 27,1-66
(주님 수난 성지주일)

오늘 군중들은 올리브 가지를 들고
화려한 행렬을 하며 예수님을 맞이하지만
사실 그것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행렬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죽이도록
유다인들에게 넘겨준 사람은? 하고 물으면,
거의 다 ‘유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겉으로는 그런 것 같지만 틀렸다.

맨 먼저,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결정을 하고
유다인들에게 넘겨주신 이는 하느님 아버지셨다.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대사제 카야파나 배신자 유다의 사악한 의도까지도
도구로 삼으신 것이지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아무런 권한도, 결정권도 없었다.

어제 복음에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죽도록
카야파의 입을 통해 외아들을 내어주시고
그 아버지는 긴 침묵을 시작하셨다.

아버지의 철저한 침묵으로 인해
성주간 동안 우리가 마주하게 될
수난받고 죽임당할 예수님의 여정은
이제 온전히 예수님 혼자 짊어지고 겪어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겪을 가장 큰 고통은
가장 고통스럽고 처절한 두려움의 시간에 느낄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고통일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르짖는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마태 27, 46)

우리도 엄청 힘들고
온전히 혼자 감당해내야만 하는
힘든 시련 속에 있을 때,
그리고 부르짖어도 아무 대답도 없이
하느님께서 철저히 당신의 얼굴을 숨기고 계실 때,
원망과 절망과 서운함으로
하느님을 외면하고 떠나가거나
아니면 자신이 부서져 가면서도
계속 더 매달릴 것이다.
어떤 편을 선택하든
마음 저 밑바닥에서 울려 나오는 외침은
한 곳에서 나온 같은 소리일 것이다.
예수님의 저 부르짖음처럼.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마태 27, 46)

그 순간은, 예수님을 앞에 세운 권력자들이
이 구원계획 앞에서는 아무 역할이 없었듯이,
우리도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우리 자신까지도 침묵하고 있는 때이다.

하느님께서 침묵을 마치실 때까지 인내할 수 있는
강할 믿음을 달라고 청하며,
십자가에 달린 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침묵 속에 기다려야 할 때이다.
지금, 이 순간은….

  • Veronica Yang. 4. 5. 2020-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