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침묵하기 시작하다.

양베로니카 수녀님의 말씀 묵상

하느님께서 침묵하기 시작하다.
에제키엘 37,21ㄴ-28 요한 11,45-56

오늘 복음 장면에서는
사뭇 대조적인 두 무리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모여있고,
그들 위에는 하느님의 뜻이 머물고 있다.

하느님 아들로서 행적이 선명해질수록
생각과 눈은 더욱더 예수님을 예의주시하지만
그들의 생각 속에는 하느님이 한순간도 없고
눈은 공허하게 텅 비어 있다.
그저 기득권자로서 자신들의 안위가 어찌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안절부절못하며 내는 소음만이 가득하다.

이런 약하고 불순한 무리 가운데서도
대사제의 입을 통해서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말씀하고 계시고
아이러니하게 그들은 이를 발판삼아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을 내린다.

다른 한 편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광야 근처에서 머무르고 있는 작은 무리가 보인다.

거기에는 시끄러운 의견도,
무엇을 지키기 위한 어떤 계획도,
빼앗길까 봐 불안한 어떤 견제의 소리도 없이
그저 침묵만이 자리하고 있다.

하느님의 뜻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예수님의 침묵은 점점 더 깊어져 간다.
그분 뜻이 조금이라도 흐려질까 봐 소리를 멈추고
저 멀리 광야 위 칠흑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버지의 소리를 더 선명히 듣고자
귀를 바짝 기울이고 있다.

하느님은 오늘,
갈라진 이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에제키엘 37,23) 라는
계약을 이루시려 결단을 내리신다.
그리고 아들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아들의 목숨을 내맡기기로 작정하신다.

그리고
사막 위 짙은 밤하늘만큼이나 깊은 어둠으로
찢어지는 마음을 가리고서
하느님의 침묵이 시작된다.

그러나 소음으로 꽉 찬 첫 번째 무리 가운데에는
이 계약의 말씀을 상기할 여유도,
그 약속이 들어설 자리도 없고,
죽어가는 아버지의 아픈 신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Veronica Yang. 4. 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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