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요한 3,16-21

우리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작은 것 하나라도
남을 주기에는
그것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며 아까워합니다.

요즘 자녀들이 적기 때문에
사제, 수도자가 된다고 하면
대가 끊겼다며 오히려 주변에서 더 안타까워합니다.
인간끼리의 일도 이럴진대
하느님께서
배반과 속 썩임을 밥 먹듯이 하는 우리 인간을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목숨값으로 내어주십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그 사랑을 알 리 없는 철부지 같은 이들은
늘 뒤에서 음모를 꾸미며 어둠의 길을 가고 있고,
자신들이 쌓아놓은 세상의 것들이 무너질까 봐
늘 전전긍긍해 합니다.

마음은 깊이 있어 남이 모르려니 하지만
우리 존재를 움직이는 것 또한 마음이기에
우리 모든 행위를 통해서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무엇이 담기면
우리는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빛이면 빛의 방향으로,
어둠이면 어둠 속으로 저절로 우리를 가게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의지로 무엇을 해보려 해도
실패하는 이유가
그것이 마음까지 닫지 않았기에,
마음의 힘에서 나오지 않았기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감옥이라는 어둠 속에 가둬두려 해도
사도들은 빛으로 나아가서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죽기까지 저희를 사랑하신 당신 사랑으로
저희 마음을 채워주시어
저희 삶이 그 사랑으로 이끌려지는
‘사랑의 여정’이 되게 해주십시오.”

  • Veronica Yang. 4. 22. 2020-

제 안에서 불고 싶은 대로 부십시오.

제 안에서 불고 싶은 대로 부십시오.
요한 3,7ㄱ.8-15

불고 싶은 대로 부는 성령의 바람 앞에
두 눈을 감고 고요히 머물러봅니다.
그 바람이 내 안에 들어와서 가득해집니다.
그 바람이 이리저리 살랑이며 불어댈 때마다
내 영혼도 같이 충만한 기쁨으로 일렁입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대로
내 마음이 따라가고
내 삶이 움직여집니다.

사람의 아들이 이 바람에
얼마나 깊이 동화되었는지
그는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높이 올려진다는 것은
세상에서는 영광과 권력의 자리겠지만
주님께는 저 바닥까지 내려가야만 하는
치욕과 죽음의 자리이고
하느님 견지에서 볼 때는
하늘 뜻과 더 가까워지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하늘 바람이 불어오고
주님은 이 바람이 이끄는
하느님 아들의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사도행전의 초기공동체 신도들은
성령의 바람으로 충만해져서
하늘나라에서나 가능할법한
완전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바람 앞에 머물러봅시다.
이 성령의 바람이
우리 안에서 자유로이 불어대도록
고요히 자리를 내어드리며 청해봅시다.

“오소서, 성령님!
제 마음 안에서 불고 싶은 대로 부십시오.
그리고 제 삶이
그 바람 소리를 듣고 따라 살게 해주십시오.”

  • Veronica Yang. 4. 21 2020-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리며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리며
요한 3.1-8

부활 팔부 동안의 복음은
주님의 부활을 믿기 위한
고되고도 힘겨운 여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보고도 믿지 못하고
본 이들의 증언을 들어도 믿지 못하는
참으로 힘든 믿음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성령에 대해 직접적 간접적인 언급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죽음의 세례를 통해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할례처럼 몸에 새기는 계약의 표시가 아닌
하늘에서 온 성령으로 거듭나는
세례를 받으라고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똑똑하다는 학자인 니코데모도
이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땅의 지식으로 풀어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암담해질 뿐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니,
위로부터 나야 한다느니,
바람이 어디서 오고 가는지를 모른다느니….
그저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 다시 주님이 그토록 충실히 하고자 하셨던
계약을 기억하게 됩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어 주리라.”
말을 좀 바꾸면,
“너희는 나의 자녀가 되고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어 주리라.”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아 모신 후
전적으로 하느님께 신뢰하는
자녀의 삶에 충실하게 됩니다.

배신도 하고 예수님의 죽음도 보고,
부활도 보고, 불신도 하고,
마침내는 성령까지 체험한 이들이 만난 것은
사랑 가득한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얼굴이었습니다.
이 사랑을 이해하려면 사랑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자녀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과의 계약은 이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더 구체적으로 우리 삶의 문들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이는 주님 부활을 믿는 것보다 더 어려운
사랑의 여정이 될지도 모릅니다.

  • Veronica Yang. 4. 20 2020-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느님의 자비주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요한 20,19-31

오늘 토마스의 말과 행위는
그동안 제자들이 보인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불신의 정점을 찍고 있습니다.

그냥 보고야 믿겠다는 말도 아니고
아주 구체적으로 어떻게 확인할지를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습니다.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거기에 손가락을 넣어서 확인까지 해보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옆구리에 손가락까지 넣어보고
샅샅이 확인해 본 뒤에야
믿을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상처 자리를
후벼보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불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보지 않고는 믿기 어려운 자녀들을 위해
주님은 그 아픈 상처 자국을 열어 보여주십니다.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며 절규했던 그 상처,
스승을 팔아넘기고 배신하고 도망쳐 버려
혼자 버려진 상처,
어머니에게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던 상처,
인간의 기본 품위도 간직할 수 없었던
발가벗겨진 상처….

그러나 주님께서 열어 보여주신 그 상처 속에는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사랑 자국만 선명히 새겨져서
샘이 되어 흐르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기를,
보지 않고도 믿는
참다운 자녀가 되기를 바라며
스스로 자비의 샘이 되셨습니다.

그 자비 가득한 주님 앞에 토마스처럼 엎드려
저도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 Veronica Yang. 4. 19. 2020-

나는 너를 믿는다.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나는 너를 믿는다.
사도 4,13-21 / 마르 16,9-15

이번 주 우리는 부활 팔부 축제를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여러 사람에게
몇 번이나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선뜻 믿지 못하고
의심을 품거나 간과하거나
아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굳은 마음과 불신에 대하여
여러 번 질타하십니다.

“믿는 데에 어찌 이리 굼뜨냐?”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그런데 독서에 나오는 사도행전의 제자들을 보면
어찌 이리도 두려움 없이 담대하고
확신에 차 있고 믿음이 굳건한지
오히려 반대자들이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믿음에 굼뜨고 의혹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던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훌륭하고 믿음직스러운
증거자로 변모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주님의 자비로우신 신뢰와 사랑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부족하고 의심 많고
무엇하나 믿음직스럽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꾸짖으시면서도 끝에는 늘
당신의 증언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라고
다시 맡겨주시고 믿어주십니다.

우리의 자격과 상관없이
끝없이 부어주시는 주님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두려움으로 얼어붙은 제자들의 마음을 녹이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의혹으로 시달리는 제자들의 눈을 열어주시고
포기하고 예전으로 되돌아가려는 비겁한 마음에
용기를 심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세상의 바다에서
각종 두려움과 의혹과 절망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우리에게 다가와 말씀하십니다.
자격이 없어 한없이 작아지는
우리 앞에서 서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증인이 되어주겠니?”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해주겠니?”

그 어떤 이유를 들어 거절해도
그분은 말씀하실 겁니다.
“나는 너를 믿는다.
너를 위해 죽고 부활한 내 사랑이 너와 함께 있잖니?”

  • Veronica Yang. 4. 18 2020-

증언자와 은폐자

증언자와 은폐자

요한 28,8-15

오늘 복음에서는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의

아주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던 여인들에게

주님의 부활은 기쁜 소식이었기에

그들은 서둘러 제자들에게 달려갑니다.

그러는 동안 다른 무리는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이 사건을 알리려고 달려갑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주님의 부활을 숨기기 위한

전략회의가 벌어지고

결국, 그들은 뇌물을 주며

이를 ’은폐‘하기로 결정합니다.

같은 증인이지만

여인들은 부활의 증인으로서

이 세상의 가치를 넘어서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이해할 리 없는 이들은

어두운 일을 할 때 거래되는

’뇌물‘을 받고 돌아갑니다.

여인들이 새로운 부활의 자리로 돌아갈 때,

병사들은 자신들이 머물렀던

이전보다 더 못한 상태로 돌아갑니다.

자신들의 삶이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우리도 내게 도전이 되고 거북하다 여겨질 때

이 세상의 가치를 위해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주님을

우리 의식 저 밑바닥으로 밀어놓고

은폐하려곤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아무런 충만한 기쁨도 없이.

자주 나타나 부활한 당신을 보여주시는 주님께

우리도 부활의 기쁨으로 고무되어 ’은폐자‘가 아닌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의 발목을 붙잡고 청해봅시다.

그리고 고백해봅시다.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사도2,32)

Veronica Yang. 4. 13. 2020

주님 부활 대축일

주님 부활 대축일

요한 20,1-9

사순시기 동안 십자가 길을 묵상하면서

철저히 완전히 죽어야만

부활이 있을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목격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활의 체험으로

거듭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어서 주님의 승천과

성령강림도 목격하고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죽음과

부활과 성령을 체험한 이들이 가야 할 길은

그 충만한 기쁨에 묻혀 있기 위함이 아니라

선포하고 증언하는 증인으로서의 삶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더 확고한 증인이 되기 위해

수난을 넘어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여정을 걷게 됩니다.

그 길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말에

놀라서 달려간 베드로와 요한에게처럼

우리에게도 쉽지 않은 여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지만 부활에 대한 확신에 이르기까지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부활하신 주님의 얼굴을 뵈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나약함을 채워 줄

성령체험까지 가야만 증인의 삶이 가능한가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도 제자들처럼

주님의 시신이라도 찾으러 달려나가 봅시다.

그러다 보면 그 길목 어디에선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부활을 경축하는 오늘

코로나19로 돌아가신 세상의 많은 영혼들과

몇 년 전

4, 16일에 세상을 떠난 세월호 희생자들이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한 안식을 누리 수 있도록,

그리고 유가족들에게는 부활에 대한 확신으로 갖게 될

위로를 주시기를 청해봅니다.

Veronica Yang. 4. 12. 2020

두려워하지 마라.

부활성야 (The Easter Vigil)

두려워하지 마라.

마태 28,1-10

알렐루야!

드디어 죽음을 이기고

영광스러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간절히 바랐지만

마음 한 켠에는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었던

불신의 자리가 있었나 봅니다.

주님의 부활이 이리도 믿기지 않으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접한 이들이 겪는 감정을

‘두려움’이라는 단어로 여러 번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대상에 따라

서로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활 소식을 전하는 천사를 본 경비병들은

두려움으로 실신하여 죽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진짜로 일어날까 봐

틀어막으려고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찾고 있던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기쁨에 넘치면서도 한 편으로는 두려워하며 달려갑니다.

(half-overjoyed, half-fearfull)

주님을 만나고 난 모세의 얼굴 살갗이 너무 빛나서

모세는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은

얼마나 빛나고 말할 수 없이 광채 찬란하겠습니까?

그 누가 ‘두려움’ 없이

그 빛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분은

우리 앞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인간적인 두려움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도구로 쓰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잠재력과

숨겨진 계획을 불신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는

우리의 한계를 딛고

감히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부활의 영광의 광채에 참여하게 합니다.

거품을 물고 두려움으로 쓰러져 있던 경비병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뵐 수 없었지만

늘 그분을 찾고 있던 무덤에 다다른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을 뵙게 됩니다.

비록 부활에 대한 완전한 믿음은 아닐지라도

찾아 나선 이들에게 주님은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우면서도 기쁨에 벅차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러 달려나갑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 길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Veronica Yang. 4. 11. 2020

주님께서 우리의 밤 속으로 들어오시다.

주님께서 우리의 밤 속으로 들어오시다.

이사 50,4-9s 마태24,14-25

어제,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반을 앞에 두고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시면서

가장 괴로운 고통의 밤을 지나고 계신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려고 나갔을 때도 밤이었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을 때도 밤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밤에 그들과 함께 머무르셨다.

우리의 밤은 우리의 약함으로 빚어진 것이라면

예수님의 밤은

그 밤 속에 갇힌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자청해서 들어와 머무시는 밤이다.

그들의 배반의 칼날이

당신에게 치명적인 죽음의 고통을 초래할 줄을 알면서도

그런 약한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신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저는 아니지요?“ 라고 묻지만

그들을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 달아나고 싶어서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을….

우리의 역사는 배반으로 끝나지만

하느님의 역사는 사랑으로 맺고 자비로 다시 여신다.

오늘 거론된 두 배반자는 자신의 행위를 깨닫는 순간

아프게 울며 후회를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만 초점을 두고 절망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고 다시 일어섰다.

예수님께서 다시 만난 베드로에게 거듭 확인한 것도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느냐?’ 라는 다짐이 아닌

자비로우신 주님체험으로 굳건해진

사랑의 상태를 물으셨다.

어느 날, 자신의 약함으로

나는 아닐 것이라고 믿었던 상태에 떨어졌을 때

주님, 저희가 자신의 어둠 속에만 머물지 않고,

당신 자비의 빛을 향해 고개를 들게 해주십시오.

Veronica Yang. 4. 8. 2020

주님의 발

주님의 발

요한 12,1-11

예수님은 카야파의 예언 후에

당신의 죽음을 하나하나 준비해 가십니다.

오늘은 그 첫 준비로

후일에 당신 시신에 바를 향유를 미리 바름으로써

당신의 확고한 죽음의 서언을 알리십니다.

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깨뜨려

예수님께 바르는 마리아의 행위는

드라마의 아름다운 한 장면처럼

우리 마음에 깊은 감동을 줍니다.

눈물과 사랑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는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은 몸에 바를 향유를

지금 미리 바르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마음을 다하여 닦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다 씻어주시려 기다리던 주님의 발을,

많은 병자를 고쳐주시려 다니신 그 수고의 발을,

라자로를 살리러 달려가신 그 눈물 어린 발을,

때로는 박해자들 손을 피해 도망 다니시던 발을,

그리고 지금은 죽음을 향해

혼자 외로이 걸어가고 있는 발을….

지금 마리아에게는 그녀의 행위에 대한

온갖 비난과 판단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직 사랑만이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많은 일은

나도 모르게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되살아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마리아의 숭고한 행위처럼.

우리가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고 나누는 그곳에

주님은 소리 없이 다가와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위한 준비를 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사람들의 소음을 뒤로하고

오직 사랑으로 다른 이를 향해 손을 내밀어

마리아처럼

눈물과 사랑으로 혼자 수난길 가실

주님의 외로운 발을

마음 다해 닦아드리면 어떨까요?

Veronica Yang. 4. 6.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