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선교수녀회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양베로니카 수녀님의 말씀 묵상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The Lord remembers his covenant for ever.
창세기 17,3-9, 요한 8,51-59

오늘 창세기의 말씀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해주시면서
약속과 함께 계약을 맺는다.

우리가 계약을 맺을 때는 어느 정도 동등해서
서로 간에 이득을 나눌 수 있을 때 맺는다.
그런데 하느님과 그에 온전히 의존해서 사는 인간,
거저 주는 이와 온전히 거저 받는 이 사이에
하느님께서 먼저 계약을 맺자고 하신다.
그리고 그 계약 내용은 계약이라기보다는
대대손손 자녀를 보살피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가 찾은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였다.

아브라함이 초대받은 것은 세세 대대에 이어질
하느님 자녀로서의 풍요로움과
자녀로서의 특권이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처하는 유다인들에게
그들이 이해하기 힘든 도전의 말씀을 계속 던지신다.
그러자 그들은 계속 항변하면서
자신들이 쏟아놓는 말을 통해
그들의 진심을 하나, 둘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들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아브라함도 죽었고, 예언자들도 죽었다고 말한다.
그 말은 사실인 듯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아버지로 따르는 아브라함과
예언자들이 전해 준 말씀의 핵심이
더 이상 자신들 안에 살아 있지 않고 죽었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더 이상
“나는 너와 네 후손들의 하느님이 되어주겠다.”라는
계약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에
예수님은 거듭 아버지와
참 자녀의 관계를 일깨워 주려 애쓰지만
그들의 마음은 할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말로는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라고 말하면서
거짓말쟁이가 되고 있다.

예수님은 또 다시 도전카드 하나를 던지신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주님은 당신이 알고 계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면서
자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약’이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힘들여서 해야 할 부담스러운 숙제처럼 여겨
지레 주저앉아 포기해 버리곤 한다.

‘계약’은 의무가 아닌 하느님 자녀로서 누릴
무한한 자비의 초대이며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할례라는, 회개라는 나의 돌아섬의 몸짓이 버겁다며
광야의 불신자들처럼 불평만 하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만 충실히 계약을 준수하시고 계실 뿐이다.
”나는 대대로 너희의 하느님이 되어주겠다.“

예수님만 여전히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고 계실 뿐이다.
귀 막고 마음이 단단히 굳어진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처참히 죽기까지
바보처럼 묵묵히 그 계약을 지키고 계신다.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시편 105, 화답송 후렴)
‘ The Lord remembers his covenant for ever. ’

  • Veronica Yang. 4. 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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